공지사항
.형사사건전문변호사2018년 3월 5일,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미투(#MeToo)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는 ‘연극계의 거장’이라 불리던 이윤택 씨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행해온 성폭력을 고발하는 자리로 당시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기자회견의 주체는 피해자 16인과 함께 공동변호인단 101인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내 공동대책위원회’(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한국여성변호사회)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 3월 23일 이윤택 씨가 구속되었고, 이듬해인 2019년 7월 24일 대법원 선고로 징역 7년 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3월 22일, 이윤택 씨의 형기가 종료되어 출소 예정이다. 연극계 다양한 현안에 대한 연극인들의 자발적인 토론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룹인 ‘대학로X포럼’에선, 이 시점에 다시 한번 미투운동에 대해 논의하고자 제10차 포럼 〈연극계 미투 이후,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를 열였다. 3월 17일 오후 2시부터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포럼엔 연극인, 관객, 예술대 학생 등이 자리를 가득 채워 ‘연극계 미투 이후’의 상황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윤택 성폭력 사건 되짚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피해자 18인 중 15인, 25세 미만에 최초 피해 입어 고등학교, 대학교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 비중 높아 배우이자 ‘성평등작업실 이로’의 이사인 이산 씨는 “이윤택 성폭력 사건 대응 이후: 연루된 일상을 살아내는 연대를 위한 질문들”이라는 발표를 통해, 해당 사건 전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연극계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운영한 이윤택 씨의 성폭력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불붙은 국내의 미투운동 속에서, 연극계 내 다수의 피해자가 발언을 한 덕분에 공론화되었다. 이산 씨에 따르면, “피해 진술서가 최소 26부 이상 변호인단에 제출”될 정도”로 피해 규모는 상당했다.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범행만이 재판에서 다뤄졌지만, 사실 피해 횟수는 훨씬 더 많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원인을 분석하는 건,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지점이다. 이산 배우는 “고소인단이 가지고 있는 진술서 내용에서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피해자는 18인이었으며, 그중 15인이 25세 미만에 최초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짚으며,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의 비중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어리기 때문에, 잘 몰라서 타깃이 된 것이라기보다 이들이 극단 내 ‘막내, 신입’이라는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가해자가 잘 알았다는 뜻이다. 이산 배우는 “피해자들로부터 정말 많이 들었던 진술 중 하나가 ‘피해 당시엔 그것을 피해로 인식할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이 행위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피해자들이) 인지는 했지만, 이것을 폭력 혹은 비윤리적인 행위로 해석하거나 말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런 해석의 권한이 단원들에게 없었을 것이다. 피해자는 오히려 성폭력을 ‘선생님’에게 할 수 있는 안마나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연기 지도의 일부로 수용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성적 거래로 배역을 얻으려 한다고 비난할까 두려워 위축되기 쉬웠다.” 극단 운영 방식이나 연기 지도 방식도 문제였다. “모든 사안의 결정, 단원에 대한 평가가 다 이윤택의 권한”이었는데, 그 평가는 “기분에 따라” 극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 극단 단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산 배우는 “오늘은 최고의 배우지만 내일은 어디도 쓸데가 없는 배우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퇴단을 명령 받기도 하고, 퇴단 이후에도 계속 비방을 퍼트려서 명예가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는 등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자신의 마음 혹은 동료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이 함께 공동생활을 했지만 사실상 그 안에서는 고립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상당한 불안을 계속 갖고 있어야 했던 점”이 피해자들을 더 어렵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윤택은 성폭력을 ‘안마’와 ‘메소드 연기’로 쉽게 탈바꿈시킬 수 있었”으며, “단원들은 공연에 필요한 것이라면 늘 기꺼이 해내야 한다는 배우의 규범을 이미 학습한 상태에서, 메소드와 성폭력의 경계를 구별하는 시도가 부적절하거나 위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미투 운동 이후의 변화들 이윤택 성폭력 사건 이후, 연극계 내 여러 사람들이 변화를 도모했다. 장지영 드라마터그는 “가해자 개인에 대한 고발뿐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한 연극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여러 단체들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규약을 만드는 등 연극계 전반의 분위기 변화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2018년 미투 이후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 결성되어 활동을 이어왔고, KTS 워킹그룹이 만들어져 ‘한국 공연예술 자치규약’을 만들어 배포하였다.(관련 기사: ‘우리 극장에서 성폭력은 안 돼’…공연예술인들의 약속 https://ildaro.com/8404, ‘성/폭력 예방규약은 창작을 방해하지 않는다’ https://ildaro.com/8405) 부산에서는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가 만들어졌고, 전북에서도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가 결성되는 등 지역에서도 단체가 만들어져 행사를 지속했다.” 관객들 또한 변화를 촉구하고 모색했다. “2018년 2월 있었던 관객들의 #withyou 집회를 비롯, 관객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연극계의 불평등한 문화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대표는 “2018년 미투 운동을 통해 부산 지역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피해자들의 공론화를 통해 알려졌고, 이후 부산 지역 여성단체연합과 예술인들이 함께 예술계 미투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고, 부산문화예술계 성폭력 특별대응센터가 만들어져 임시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특별대응센터는 4개월 만에 중단”되었다. 이후 다시 그 필요성을 요구하는 거센 목소리를 낸 결과, “부산시는 2019년부터 부산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바뀌지 않은 것들, 그리고 백래시 연극계 미투운동 이후 많은 예술인들이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송진희 대표는 “2025년 공모 사업으로 (부산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센터) 위탁운영 단체가 변경되면서, 피해자 지원과 사건 대응을 중심으로 해 오던 기존 예방센터의 운영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송 대표는 “예방센터의 의미와 운영 방향성 그리고 안정적인 지원과 운영 모델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국면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사실 예방센터를 향한 백래시는 계속되고 있다. 예방센터의 필요성을 계속 이야기해오고 있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문화예술계에서 왜 피해 지원을 해야 되냐, 이런 활동이 문화예술계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또한, 예방센터에 대해 ‘피해 지원의 전문성이 없다, 신빙성이 없다’는 등의 소문을 내서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공격하는 가해자들의 카르텔이 공고한 지역의 현장이 있다.” 그 누구보다 먼저 변화를 만들어내고, 학생과 교직원 모두에게 평등한 공간을 마련해줘야 할 학교도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예술종합대학(한예종) P교수 성추행 사건과 음주수업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지후 연출가는 공대위 활동을 하면서 발견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학교 측은 상처받은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도닥이는 것이 ‘사후 대처’의 핵심이라고 착각한다는 것, 공식 메일로 소통하지 않고 전화 통화나 일대일 면담 등 사적으로 대화하려 한다는 것, 학과의 문제가 교학처로 넘어가 처리될 수 있는 연결다리가 없다는 것, 어쩌면 유일한 연결다리가 학과 교수라는 것, 그러나 학과 교수들은 그 일을 무척 피곤해한다는 것, 문제 해결의 주체가 없고 사과만 거듭한다는 것, 학교가 문화체육관광부의 눈치를 예상보다 많이 본다는 것, 그래서 학생에게 이쯤에서 넘어가 줄 수 있냐고 떠본다는 것” 등이다.